마음의 등불방

마음의 등불방 — 삶 속 깨달음과 신앙의 빛을 나누는 글

바쁜 하루 속, 마음의 등불 하나 켜고 잠시 숨을 고르는 공간입니다.
짧은 글 한 줄, 작은 이야기 하나에도 마음의 빛이 스며들어, 조용히 하루를 밝힙니다.
오늘, 이 공간에서 내 안의 빛을 느끼고 서로에게 따스한 빛을 나누어보세요.

침묵 속의 예배

작성자
poh
작성일
2025-10-28 13:11
조회
67
침묵 속의 예배

이른 새벽, 아직 해가 떠오르기 전의 고요한 시간. 나는 조용히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창밖의 어둠은 세상의 분주함이 잠시 멈춘 듯했고, 방 안에는 잔잔한 평안이 흘렀다.
큐티를 시작하기 전, 말씀 앞에 마음을 가다듬고 있을 때였다.
그 순간, 문득 어제 운전 중에 들었던 한 설교의 한 장면이 내 마음속에 또렷이 떠올랐다.

일제강점기, 이 땅에 자유가 없던 시절이었다. 우리 민족은 언어마저 빼앗긴 채, 정체성과 신앙마저 억압당하며 살아가야 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한국어로 설교하는 것이 금지되었고,
믿음을 표현하는 것조차 제약받았다.
그 시대, 한 목사님은 더 이상 말을 통해 설교할 수 없게 되자 결국 침묵으로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그는 강단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성도들은 그 침묵 앞에 눈을 감고 하나님을 만났다.

그 장면이 내 마음 깊은 곳을 울렸다. 아무 말 없이 선 그 한 사람 앞에, 얼마나 많은 기도와 눈물이 흘렀을까.
형식이 사라진 자리에서, 그들은 더 진실하게 하나님을 마주했을 것이다.
나는 나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면, 나는 어떤 자세로 예배했을까?”

돌이켜보면, 나는 너무도 많은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자유롭게 찬양할 수 있고, 원하는 만큼 말씀을 들을 수 있으며,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기도할 수 있는 환경. 그 모든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알고 있었지만, 익숙함 속에서 점점 무뎌졌던 것은 아닐까. 너무 쉽게 누리는 신앙의 자유 앞에서, 감사보다는 당연함이 먼저였던 내 모습을 부끄럽게 돌아보게 되었다.

만약 말할 수 없다면? 찬양을 부를 수 없다면? 설교를 들을 수 없다면?
모든 형식이 사라진 그 자리에 나는 과연 여전히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을까?

그 침묵의 예배는 단지 언어의 제한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오히려 말이 없기에 마음은 더 선명하게 하나님을 향했고, 침묵 속에서 더 깊은 고백이 울려 퍼졌을 것이다.
때로 말이 줄어들수록 마음은 더 깊어진다. 겉모습이 사라질수록, 믿음의 본질이 더 또렷하게 드러난다.

나는 그 장면을 상상해보았다. 모두가 조용히 눈을 감고, 한 사람의 침묵 앞에 함께 서 있는 순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지만, 성령의 임재가 조용히 공간을 채워가는 시간. 내면의 웅성이 멈추고, 오히려 그 침묵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더 또렷하게 들려오는 순간.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지금 드리는 예배보다 더 뜨겁고 진실했을지도 모른다.

예배의 본질은 결국 마음이다. 찬양도, 설교도, 기도도 중요하지만, 그 모든 것을 뛰어넘어 하나님께 향하는 진심 어린 마음이야말로 예배의 중심이어야 한다. 내가 얼마나 조용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지, 가식 없이 내 내면을 드릴 수 있는지, 그 정직한 마음이 하나님께 닿는다.

오늘 새벽, 나는 그 침묵의 예배를 마음에 품고 조용히 기도했다. 말없이, 그러나 마음 깊은 곳의 회개와 감사가 조용히 흘러나왔다. 오히려 말로는 다 담아내지 못할 기도가,
그 고요한 침묵 안에서 더 진실하게 드려졌다.

세상은 점점 더 많은 소리와 정보로 가득 차 있다. 끊임없는 자극과 말들 사이에서, 침묵은 점점 잊혀져 간다.
그러나 신앙의 여정은 어쩌면 그 반대 방향을 향해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진짜 기도는 때로 말보다 깊은 침묵으로 드려지고, 진짜 예배는 화려한 표현보다 조용한 고백 속에 있다.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내가 드리는 예배는 얼마나 진실한가. 혹시 형식에만 머무르고 있지는 않은가.
다시 처음 사랑, 처음 감격으로 돌아가길 소망한다. 말이 없어도, 소리가 없어도, 침묵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자가 되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그런 예배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란다. 말 없이도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그 자리,
침묵이 곧 고백이 되는 시간.
그 목사님의 침묵 속 설교를 오늘 내 마음으로 이해하게 된 것처럼, 나의 예배도 오늘 한 걸음 더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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