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등불방

마음의 등불방 — 삶 속 깨달음과 신앙의 빛을 나누는 글

바쁜 하루 속, 마음의 등불 하나 켜고 잠시 숨을 고르는 공간입니다.
짧은 글 한 줄, 작은 이야기 하나에도 마음의 빛이 스며들어, 조용히 하루를 밝힙니다.
오늘, 이 공간에서 내 안의 빛을 느끼고 서로에게 따스한 빛을 나누어보세요.

설거지 시간의 기도

작성자
poh
작성일
2025-10-14 01:45
조회
96
나는 설거지를 좋아한다. 말만 꺼내도 이상하다고 고개를 갸웃하는 이들이 많다. 어떻게 거품 튀는 물 앞에서 서서, 손이 불고 허리가 아파오는 일을 좋아할 수 있냐고. 하지만 나에게 설거지는 단순한 집안일 그 이상이다. 그것은 나만의 고요한 예배의 시간이며, 마음 깊은 곳을 어루만지는 회개의 시간이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는 치유의 시간이다.

하얀 접시에 말라붙은 밥풀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한다. 저것은 바로 오늘 하루 속 나의 모습이 아닐까. 쉽게 떼어지지 않는 내 안의 고집과 교만, 말없이 남을 판단했던 마음. 물에 담그고 부드럽게 문지르다 보면, 그 밥풀이 슬그머니 떨어지듯이, 내 마음도 그렇게 조금씩 녹아내린다. 차갑고 메마른 내 영혼을 따뜻한 물로 달래며 나는 하나님 앞에 조용히 무릎을 꿇는다.

찬물에 닿으면 손끝이 시리고, 기름때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릇이 깨끗해질수록, 내 안의 찌든 감정들도 함께 씻겨 내려간다는 것을. 때로는 억지로 붙들고 있던 자책도, 이유 모를 서운함도, 세제와 함께 쓸려 내려가고 나면 오히려 마음이 맑아진다. 이 시간은 나에게는 작은 고백의 시간이고, 작지만 깊은 회개의 시간이다.

그리고 감사한다.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었기에 이 그릇들이 더러워졌다는 것에. 나에게 여전히 먹을 힘이 있고, 설거지를 할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이 주어졌다는 사실에. 그 평범함 속에 스며든 하나님의 은혜가 참으로 크다. 그 순간, 설거지는 단순히 청소가 아니라 예배가 된다. 나는 오늘도 그 은혜를 조용히 닦아낸다.

사람들은 여전히 말한다. 어떻게 설거지가 힐링이냐고. 나는 그들에게 조용히 묻고 싶다. 정말 중요한 건 일이 아니라 그 일을 대하는 마음이라고. 같은 일도 어떤 이는 지루함이라 여기고, 어떤 이는 기쁨으로 맞이한다. 인생도 그렇다. 힘든 순간 속에서도 의미를 찾는 마음, 그 마음이 있다면 어떤 일도 은혜가 되지 않을까.

오늘도 나는 그릇을 닦는다. 묵묵히, 기도하듯, 예배하듯. 그리고 조용히 하나님께 속삭인다. 이 작은 시간 속에서 나를 만나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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