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등불방

마음의 등불방 — 삶 속 깨달음과 신앙의 빛을 나누는 글

바쁜 하루 속, 마음의 등불 하나 켜고 잠시 숨을 고르는 공간입니다.
짧은 글 한 줄, 작은 이야기 하나에도 마음의 빛이 스며들어, 조용히 하루를 밝힙니다.
오늘, 이 공간에서 내 안의 빛을 느끼고 서로에게 따스한 빛을 나누어보세요.

사랑의 마지막 잎새

작성자
poh
작성일
2025-11-08 13:17
조회
56
사랑의 마지막 잎새

오늘 아침, 유난히 일찍 눈이 떠졌다. 창밖은 아직 잿빛이었다. 블라인드 사이로 비치는 희미한 햇살이 방 안을 은은하게 밝히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계단을 내려와 1층 부엌으로 향했다. 어제 밤의 온기가 조금은 남아 있는 부엌은 묘하게 따뜻했다. 커피포트를 올리고, 갓 내려진 커피 향이 퍼져 나가자, 마음까지 차분해졌다. 나는 그 커피 잔을 두 손에 감싸 쥔 채, 부엌 창가의 식탁 의자에 앉아 뒷마당을 바라보았다.

창문 너머에는 어제보다 훨씬 더 많은 낙엽들이 내려앉아 있었다. 노랗게, 붉게, 그리고 짙은 갈색으로 물든 잎들이 서로 포개어져 마치 작은 담요처럼 땅을 덮고 있었다. 가을바람이 불 때마다 낙엽들이 바스락거리며 작은 속삭임을 나누는 듯했다. 그 소리는 조용히 흐르는 세월의 발자국 같았고, 그 안에 묻어 있는 삶의 이야기가 내 마음을 부드럽게 흔들었다.

한여름 내내 푸른빛으로 반짝이며 생명을 자랑하던 나뭇잎들이 이제는 제 자리를 떠나 흙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자신이 있었던 가지를 내려놓고, 다음 생명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그 모습이 왠지 숙연하게 느껴졌다. 그 순간, 문득 오 헨리의 단편 ‘마지막 잎새’가 떠올랐다.

소설 속의 늙은 화가 베어만은 병든 소녀를 살리기 위해 폭풍우 속에서 마지막 잎새를 그렸다. 그는 끝내 폐렴에 걸려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희생으로 그려진 잎새는 떨어지지 않았다. 그 잎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잃었던 소녀의 마음에 생명의 불씨를 다시 지폈다. 그 잎을 바라보며 소녀는 다시 살아야겠다고, 다시 꿈꾸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떠올리며 베어만의 모습을 예수님과 겹쳐 보았다.
초라한 인간의 옷을 입고, 고통과 멸시를 온몸으로 감당하신 분.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그분의 피는, 우리 모두에게 영원히 떨어지지 않는 ‘마지막 잎새’가 되어 주셨다. 우리는 그 잎새 덕분에, 어둠 속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절망이 끝인 줄 알았던 순간에도, 그 사랑은 여전히 나를 붙잡고 있었다.

그 생각이 미치자 창밖의 낙엽 하나하나가 다르게 보였다.
그저 바람에 쓸려 떨어진 잎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때 나무의 일부로서 생명을 나누던 존재였다. 그리고 지금은 자신을 흙으로 돌려보내며 새로운 생명을 품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순환의 질서 속에서 나는 ‘희생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누군가의 끝이 또 다른 누군가의 시작이 되고, 죽음 속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것 — 그것이 바로 창조주의 섭리요, 사랑의 진리였다.

나는 창문을 살짝 열고 손바닥을 내밀었다. 찬 바람이 내 손등을 스치며 지나갔다. 순간, 그 바람 속에 누군가의 따뜻한 숨결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예수님이 내 곁에 조용히 오셔서 속삭이시는 듯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너를 결코 떠나지 않는다.”

그 음성이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렸다. 낙엽처럼 떨어져 버린 내 지난날의 꿈과 희망들, 그리고 잊혀진 기억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하지만 그 어느 것 하나도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그 모든 시간 속에도 하나님의 뜻이 깃들어 있었다는 것을 나는 느꼈다. 낙엽이 떨어져야 새싹이 돋듯, 내 상처와 눈물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새로운 생명을 자라고 계셨다.

오늘 아침 나는 깨달았다.
삶의 어느 계절에 있든, 우리 곁에는 언제나 ‘마지막 잎새’가 있다는 것을. 그것은 포기하지 않는 사랑의 상징이며, 끝까지 붙들어주는 희망의 증거다. 예수님께서 내 인생의 벽에 그려주신 그 잎새 덕분에, 나는 오늘도 살아갈 이유를 얻는다.

창밖을 다시 바라보았다. 바람이 불어 낙엽들이 흩날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흔들림 속에서도 이상하리만큼 따뜻한 평안이 느껴졌다. 비록 모든 잎이 떨어져도, 나무는 봄을 준비하고 있음을 나는 안다.
그리고 내 영혼 또한, 그분이 그려주신 사랑의 마지막 잎새 아래에서 오늘도 조용히 다시 살아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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