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 위에 새겨진 기도

가을이 깊어질수록 나무들은 말없이 자신을 비워낸다. 가지마다 머물던 잎사귀들이 하나둘 떨어져 길 위에 수북이 쌓이고 있다. 오늘 나는 비온 뒤 젖은 그 낙엽 위를 천천히 걸었다. 밟히는 소리는 어쩐지 내 마음 한켠의 기억을 두드리는 듯했다. 그 소리 속에서 나는 오래전 잊고 지낸 기도의 흔적을 들었다.

한동안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옅은 구름이 물결처럼 흘러가며 저녁 노을빛을 머금고 있었다. 그 빛은 눈부시지 않았지만, 부드럽게 내 마음을 감쌌다. 마치 하나님께서 “오늘도 네 곁에 있다”라고 조용히 속삭이시는 듯했다. 그 순간, 바람이 스쳐 지나가며 나뭇가지 사이를 흔들었다. 그 소리는 바람이 아니라, 어쩌면 하나님의 숨결이었다.

나는 두 손을 모았다.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마음이 손끝으로 모여들었다. 눈을 감자, 들려오는 것은 오직 내 숨결과 낙엽의 노래뿐이었다. 그 단순한 순간에 세상은 멈춘 듯했고, 마음은 어느새 고요한 평화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렇게 나는 하나님과 눈에 보이지 않는 대화를 나누었다. 아무 말 없이, 그러나 분명한 대화였다.

‘나는 참 작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바람 한 줄기에도 흔들리는 나, 때로는 길을 잃고 방황하는 나. 하지만 그 작음을 감싸는 하늘은 너무도 크고 너그러웠다. 하나님은 마치 끝없이 펼쳐진 하늘처럼, 나의 불완전함을 품으시며 기다리신다. 내가 멈추고, 흔들리고, 울더라도 그 품은 결코 좁아지지 않았다.

그 품 안에서 나는 안식했다. 그 평화로움은 세상의 어떤 위로로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었다. 눈물이 고였고, 그 눈물은 슬픔이 아니라 감사의 눈물이었다. 세상 한가운데서 하나님이 내게 주신 평화,
그 은혜가 마음 깊이 스며들었다.

다시 걸음을 옮겼다. 낙엽이 발끝에서 속삭였다.
“기도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야. 지금 네 발밑에도, 네 호흡에도, 네 눈길에도 있단다.”
나는 그 말을 믿고 싶었다. 그래서 더 천천히 걸었다. 낙엽 하나하나가 작은 기도문처럼 느껴졌다. 나의 지난 날의 상처와 후회, 감사와 소망이 그 낙엽에 새겨져 있었다.

해가 기울고, 바람이 점점 차가워졌다. 그러나 마음은 이상할 만큼 따뜻했다. 하늘은 여전히 높고, 그 아래 나는 여전히 작았다. 하지만 그 작음 속에 있는 믿음이 나를 지탱했다. 세상은 바뀌고, 나 또한 흔들리겠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신다.

낙엽을 밟으며 걷던 그 길 위에서 나는 조용히 다짐했다.
세상이 아무리 복잡해도, 마음이 무거워도, 늘 하늘을 올려다보며 살리라.
그 하늘 아래에서 꿈꾸는 마음으로, 하나님과 함께 날마다 새롭게 날개를 펼치리라.

그리고 마지막 낙엽 하나가 바람에 흩날릴 때, 나는 속삭였다.
“하나님, 오늘 제 마음을 받아주세요. 이 작고 흔들리는 삶이, 당신의 평화를 닮아가게 해주세요.”

오늘, 낙엽 위에 새겨진 나의 기도는 그렇게 하늘로 올라갔다.
바람에 실려, 빛에 닿아, 조용히 하나님께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