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등불방

마음의 등불방 — 삶 속 깨달음과 신앙의 빛을 나누는 글

바쁜 하루 속, 마음의 등불 하나 켜고 잠시 숨을 고르는 공간입니다.
짧은 글 한 줄, 작은 이야기 하나에도 마음의 빛이 스며들어, 조용히 하루를 밝힙니다.
오늘, 이 공간에서 내 안의 빛을 느끼고 서로에게 따스한 빛을 나누어보세요.

흙 위에 피어난 마음

작성자
poh
작성일
2025-10-17 02:45
조회
54
흙 위에 피어난 마음

오늘은 아내와 함께 교회에서 알게 된 한 자매의 집을 찾았다.
그녀는 한국에서 현대 도자기를 전공하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작가로도 활동하던 분이다.
섬세한 손끝에서 탄생한 도자기들은 그녀의 정체성을 말해주듯 깊이 있는 빛을 머금고 있었고,
흙과 유약, 불과 시간이 어우러져 만든 그 고요한 예술은 곧 그녀 자신이었다.

하지만 이민자의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낯선 언어, 낯선 문화, 낯선 시선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한다는 건 때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도 하다. 그녀는 이곳에서 더 이상
전공자로서의 활동을 이어가기 힘들었고, 그저 몇몇 일반인을 대상으로 취미반 수업을 열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도자기 가마 대신 좁은 전기 화덕, 전시회 대신 소소한 바자회, 작가라는 이름 대신
‘선생님’이나 ‘도자기 아줌마’로 불리는 현실. 어쩌면 이민자의 삶에서 너무도 흔한 장면일지도 모르겠다.

식탁에 마주 앉아 찻잔을 손에 쥐고 있던 그녀는 조심스레 속마음을 꺼내놓았다.
“가끔은 내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싶어요. 손으로 흙을 만지는 건 여전히 좋지만,
그게 예전 같지 않아요. 그냥… 누군가의 취미를 돕는 사람으로 머무는 것 같아요.
제 안의 열정이나 꿈은… 점점 무뎌지는 것 같고요.”

그녀의 말은 내 마음에 조용한 파장을 일으켰다. 누구나 한때는 꿈꾸는 사람이었고,
불을 품은 채로 살아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삶은 종종 우리를 현실이란 이름의 벽 앞에 세운다.
그 앞에서 우리는 선택한다. 때론 물러서고, 때론 타협하고, 또 때론 그냥 잊은 척하며 살아간다.
그녀는 그 중간 어디쯤에서, 자신의 마음을 붙잡고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지금 내게 주어진 재능들을 잘 쓰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탈란트들—사람을 이해하는 마음, 글로 마음을 전하는 능력,
누군가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는 성품—
그 모든 것들을 나는 과연 그분이 기뻐하실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는가?

솔직히 말하면, 그렇지 않다. 바쁘다는 핑계로, 무뎌졌다는 이유로,
나도 모르게 그 귀한 것들을 묻어두고 살았다.
어떤 날은 그것들이 별것 아니라고 여겼고, 어떤 날은 내가 그만한 자격이 없다고 느꼈다.
그렇게 내 안의 불은 서서히 작아졌고, 결국 나는 “불이 꺼지지 않은 채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그녀를 통해 나는 다시 배웠다. 흙은 말이 없지만, 기억을 품는다.
흙을 빚는 자의 손길, 그 손에 깃든 마음, 굽는 시간 동안 들여진 기다림과 기도가 그대로 남는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그 작품은 진심을 품고 있다.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다듬으실 때처럼.

하나님은 단지 큰 무대에서의 성공을 원하시지 않는다. 오히려 작은 삶의 조각들 속에서, 진심으로 빚어진 순종을 원하신다. 내가 쥐고 있는 도구가 무엇이든,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귀한 사역이다. 내가 전하는 말 한마디,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순간, 작은 글 한 줄,
사소해 보이는 섬김조차도 그분의 손에 닿으면 거룩한 그릇이 된다.

나는 오늘 그녀의 집에서 단순히 도자기 작품만을 감상한 것이 아니다.
나는 한 사람의 고백을 들었고,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믿음의 여정을 보았다.
그녀는 자신이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지만, 그 고백 자체가 이미 얼마나 귀한 믿음인지를 나는 느낄 수 있었다.
흔들림 없이 선 믿음보다, 흔들리면서도 끝까지 놓지 않으려는 믿음이 더 진실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다시금 깨달았다.

돌아오는 길, 운전을 하면서 차창밖을 보았다. 햇살이 길게 드리워진 오후였다.
마음속에 조용한 울림이 번지고 있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다짐했다. 이제라도 다시 시작하자.
내 안에 주어진 것을, 다시 꺼내어 하나님의 손에 맡기자.
작고 보잘것없어 보여도, 그것이 진심이라면 그분은 반드시 아름답게 사용하실 것이다.

오늘 나는, 한 잔의 차와 도자기 몇 점, 그리고 그녀의 고백을 통해 내 안의 불씨를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리고 조용히 다짐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나의 삶이, 나의 탈란트가,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되기를.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어 보여도, 그분의 손에 닿을 때 그것은 반드시 의미가 된다.

돌아오는 길, 하늘에선 뜨거운 햇살이 붉은 도자기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나는 그 햇살 아래에서, 하나님이 내 안에 여전히 살아 계심을 느꼈다. 그리고 기도했다.
“주님, 저를 다시 빚어 주세요. 흙처럼 낮고 조용한 인생이지만, 당신의 손에 들려진 그릇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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